르네상스 또는 문예 부흥, 학예 부흥은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을 말한다. 과학혁명의 토대가 만들어져 중세를 근대와 이어주는 시기가 되었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문화사)와 로마 문명(→ 고대 로마사)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안가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를 시간적, 지역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여러 곳에서 점진적으로 시작된 것이며 마찬가지로 중세가 언제 어디서 끝나는지도 얘기할 수 없다. 보통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이슬람 세계, 비잔틴 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여 서유럽과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11세기 이후 상업의 발달과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도시의 활성화로 도시는 점차 도시국가 형태의 자치도시가 되었다. 13세기 말의 경제성장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가 심해져서 특유의 시민문화가 형성되었는데 도시국가는 그 특성상 고대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점도 있어 로마법이나 정치제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초기 르네상스를 체현한 인물로 피렌체 출신의 단테가 있다. 그는 정적에 의해 추방당해 유랑생활을 하던 중 대표작인 신곡을 완성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지옥, 연옥의 안내인으로 등장시키는데, 영혼의 정화를 통해 천국으로 승천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고전문학과 카톨릭을 조화시켜 대 서사시를 그려내었다.
단테보다 후대 사람인 페트라르카는 로마 제국 시대에 인간이 최고의 것을 성취했고 그 이후 점차 부패하여 중세 암흑시대까지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를 종교적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진보로 간주했으므로 그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재발견하여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전문헌을 모으고 라틴어로 시와 책을 쓰다가 이런식으로 고전 교양을 모아 인간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사색하는 방식을 인문주의라고 불렀다. 그는 속어로 책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온고지신적인 태도는 이후의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페트라르카는 리비우스의 역사와 키케로의 도덕철학에 관심을 보였고 최초의 인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화에서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조토이다. 그는 시공간을 다룸에 있어 고대의 스타일을 원용하였다. 법률에 있어서는 볼로냐 대학을 중심으로 로마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는데 그 체계화를 이룬 사람은 바르톨루스다.
이러한 움직임은 1348년의 흑사병과 각종 정치적인 격변으로 더이상 꽃피지 못했다. 이러한 인문주의가 다시 꽃피게 되는 것은 15세기가 되어서였다.
르네상스의 시작점을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1453년)에서 찾는 관점도 있다. 그것은 대포와 화약이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온 전환점이 된 전쟁이었고 비잔티움 제국, 그리스 학자들은 그리스 로마의 문헌들을 가지고 로마로 도망쳤다. 이들은 이탈리아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으며 유럽의 오래된 종교적 질서가 붕괴되는 것에 일조하였다.
130년간 지속되던 르네상스는 1530년경 끝이 났다. 그 이유는 우선 1492년 크리스토발 코론이 포르투갈인들과 함께 인도로 가는 해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사실은 아메리카로 가는 해로였다.) 그 후에는 북서부 유럽의 상인들이 무역상품을 리스본과 안트웨르펜을 통해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1517년 아우구스티노회의 수도사인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었다. 교회의 분열은 그동안 납부금과 세금의 형태로 이탈리아를 풍요롭게 했던 돈줄의 고갈을 의미했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상륙과 종교개혁으로 결국 이탈리아는 상업적 무역자본과 자본, 두가지를 동시에 잃었다 또 이탈리아는 그 당시 정치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